• GRAM NEWS
  • GRAM NEWS
제목 난민들의 피난처 2022년 가을 소식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자 2022-10-24
조회수 82


https://mailchi.mp/15c78a56d2b2/2022
난민들의 피난처 뉴스레터
View this email in your browser

피난처의 가을 이야기
 
벌써 한해의 3/4가 훌쩍 지났네요. 코로나19의 위기를 지나가며 다시 피난처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난민들이 늘어나고 있는 요즘입니다. 지난 7월-10월 초까지의 피난처의 크고 작은 소식들을 준비했습니다. 함께 응원해주세요.
아프간이 연 난민의 시대
피난처 이호택 대표


 이번 10월 1일 피난처 주관으로 아프간 난민 컨설테이션을 개최하였습니다. 50여명의 아프간 난민들과 특별기여자들이 전국에서 모인 성공적인 행사였습니다.

 국내에 체류하다가 탈레반의 아프간 점령으로 귀국하지 못하게 된 434명의 아프간인들과 탈레반 점령 후 한국 정부의 도움으로 피난한 79가구 391명의 특별기여자들, 그리고 탈레반 점령 후 자력으로 탈출한 난민들을 포함하여 2022년8월말 현재 한국에는 889명의 아프간인들이 체류하고 있습니다. 그 중 난민신청자들은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가라는 한국 정부의 자신들에 대한 난민불인정결정에 대하여, 그리고 특별기여자들은 의사, 간호사, 기술자 등 자신의 자격이 인정되지 않아 전공과 동떨어진 제조업 분야에서 일하게 된 고통에 대하여 호소하였습니다.

 일찍이 역사학자 토인비는 유라시아 대륙의 심장부를 지나는 길의 절반은 시리아의 알레포에서 만나고 나머지 절반은 아프가니스탄의 바그람에서 만난다고 하였습니다. 중국으로부터 유럽에 이르는 이 실크로드 길은 알레포로 대표되는 아랍권 이슬람 세계와 바그람으로 대표되는 페르시아권 이슬람 세계에서 교차로를 이루면서 중앙아시아와 중동을 관통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명의 중심지가 되었던 유서 깊은 이 두 교차로에서  최근 페르시아권 이슬 람세계와 아랍어권 이슬람 세계 전체가 흔들리는 큰 전쟁이 있었고, 이로 말미암아 대규모 난민사태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2001년 9.11 테러로 촉발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페르시아어권이 진동한 난민 사건이었고,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11년 아랍의 봄은 아랍어권이 진동한 난민 사건이었습니다.


 이렇게 열린 페르시아권과 아랍권 이슬람세계에서의 난민상황은 시간이 지나면 소멸될 일시적 현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제2, 제3의 중동난민사태와 중동전쟁의 기운이 이 지역에 여전히 감돌고 있으며 심각한 기후변화로 말미암은 대규모 환경난민의 발생, 그리고 코로나 19와 같은 전세계적 전염병의 유행이 더욱 확산되는 난민의 시대를 예고해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전쟁과 자연재해 그리고 전염병 등 재난이 전지구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입니다. 전쟁이야 유사 이래 늘 있어왔던 일이라 하더라도 점점 난폭해지는 기후변화와 코로나와 같은 전지구적 역병은 새로운 난민의 시대를 예감하게 합니다. 재난이 전지구적으로 만연한다면 이제 난민에 대한 개념도 부득이하게 확장될 수 밖에 없습니다. 전통적인 난민의 개념은 박해 중심의 협약난민이었고 현재 국제적인 난민의 개념은 보충적으로 전쟁과 고문까지 정도를 포함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혼합 이주가 증가하면서 난민보호 체계는 이미 이주와 이민의 체계에 접목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조만간 재난과 같은 의미로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사단법인 피난처는 이와 같은 확대된 난민의 시대 또는 재난의 시대에도 여전히 안전한 피난처를 세우는 사명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고 고백하는 이유입니다.

난민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는 가정방문!

 
피난처 교육협력팀 김예선 인턴
무덥던 8월 여름의 어느날, 아프리카의 시에라리온에서 오신 카미(가명)씨의 가정에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카미씨는 본국에서 무슬림인 남편과 결혼하였는데, 남편이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나자 시댁이 이슬람으로의 개종을 강요하며 박해와 폭력에 시달리다가 그 곳을 빠져나와 한국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당시 아이를 임신하신 상태로 한국에 입국했었는데, 그 때 태어난 딸이 내년에 초등학교 입학을 바라보고 있을 정도니 한국에 제법 오래 사신 분이었어요.

카미씨의 가정방문을 가기 전, 개인적으로 저는 걱정이 조금 있었습니다. 제가 문자 또는 전화로 카미씨와 연락하며 받았던 느낌은 성품이 조용하고, 소극적이며 말씀을 길게 하지 않으셔서 인지, 카미씨를 찾아가서 대화를 잘 할 수 있을까? 란 고민이 있었어요. 이번 카미씨의 가정방문의 목적 중 하나는 교육협력팀에서 기획하고 준비하고 있는 난민스토리개발이었기 때문에, 카미씨의 삶의 이야기를 이끌어 내야하는 입장이어서, 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그녀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지요.

그런데 카미씨를 직접 만나보니 이러한 걱정은 완전히 사라졌답니다. 카미씨가 말씀을 너무 잘 하시더라구요.  질문을 하나 던지면 아주 자세하게 지금까지의 삶이 어땠는지, 어쩌면 타인인 저희에게 공개하기 어려웠을 개인적인 이야기들까지 말씀해주시고 또 하나 던지면 하나님 향한 믿음과 감사의 말들, 간증들을 잔뜩 말씀 해주셨어요.
 
정말 마음에 감동이 일었던 것은 카미씨의 이야기를 다 들은 후 마지막으로 함께 기도하고 마무리하려고 하는데 기도 후 카미씨가 성령 충만함으로 터져나오는 찬송을 소리 높여 부르는 모습이었습니다. 가정방문을 가기 전까지 여러 걱정이 있었지만 그것이 무색하게 화기애애하고 웃음과 감사, 감동이 넘치는 시간이었습니다.

카미씨가 난민이 되어 한국에서 홀로 딸을 양육하며 가정을 이끌어가는 것은 물론 쉽지 않겠지만 카미씨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 처럼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양이 끊이지 않는 삶을 살아가길, 그녀의 딸 또한 어머니를 보며 지혜롭고 건강하게 자라는 아이가 될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프리즌으로부터 온 온정

 
피난처 난민보호팀 정재준 인턴

안녕하세요, 저는 피난처 난민보호팀에서 코이카 YP로 난민들을 만나고 있는 정재준입니다!

피난처에서 일하면서 다양한 난민들의 사연들을 들을 수 있었는데, 가끔씩 외국인 보호소에서 연락을 하시는 난민분들이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아무래도 보호소는 훨씬 열악한 상황이어서 그런지 도움을 드릴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없다고 하더라구요.

난민들은 외국인 보호소(Detention Center)를 흔히 프리즌(Prison : 감옥)이라고 이야기 하시는 분들이 많았는데요. 그만큼 자유롭지 못하고, 열악한 상황인 난민들의 마음을 잘 표현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느 날 프리즌(외국인보호소)에서 카자흐스탄 출신 난민 A씨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저는 처음에 '프리즌(감옥)'이라길래 A씨가 범죄를 저지르신 분인 줄 알고 약간 긴장을 했었는데요. 그의 힘없는 목소리를 듣고 금새 보호소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긴장을 풀고 천천히 A씨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A씨는 혈압이 200 가까이 나올 정도로 고혈압인데 보호소의 생활이 너무 힘들고, 되려 혈압이 더 올라가고 있는 것 같다며 도움을 요청하셨습니다. 보호소 안에는 처방을 해줄 수 있는 의사나 병원이 없는지, A씨의 상황이 안타까워 물었지만, A씨의 대답은 병원이 있는 지 모르겠고, 아프다는 대답 뿐이었습니다. 소통이 어려우실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직접 A씨가 지내고 있는 보호소에 전화해 직원분께 의료지원이 가능한 상황인지를 문의했는데, 직원분의 말씀으로는 내부 의료시설이 있지만 약을 처방해주는 정도이고, A씨의 경우 외부 병원 진료가 필요할 것 같은데 피난처가 외부의 병원을 알아보아 줄 수 있는지 도움을 요청하셨습니다.

A씨를 도울 수 있는 병원을 알아보기 위해 여러 수소문 끝에 지방의 국립의료원 사회사업실을 연계하게 되었습니다, 순조롭게 A씨가 치료받을 수 있게 되어 안심이 되었지만, 갑자기 해당보호소에서 코로나 환자가 발생하게 되면서 단체격리가 시작되어 A씨의 병원방문은 기약없이 연기가 되었고, 그 상황이 답답했던 A씨는 계속해서 저에게 연락을 해왔습니다. A씨는 불안하셨는지 매 통화 때마다 자세히 상황을 설명해드렸지만, 계속해서 전화를 주셨었죠. 보호소 안에서 전화는 개인의 핸드폰이아닌, 공중전화를 줄서서 오래 기다렸다고 해야하는 전화이기에, A씨가 얼마나 간절하게 늘 피난처에 전화하는지가 느껴졌습니다. 전화를 받을 때마다 해결되는 것이 없이 그저 기다리시라는 말씀을 드려야 하는 제 마음도 안타까웠고, 얼굴을 한 번 보지 못한 분이었지만 A씨에게 정이 갔습니다. 하루는 할 줄 모르는 러시아어로 A씨에 "뜨라스브이쩨(안녕하세요)"라고 말하며 인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전화는 두 달이나 계속되었는데요. 감사하게도 기다렸던 시간이 지나가고 A씨가 국립의료원에서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니 A씨의 기다림은 참 쉽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 과정 가운데에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이 생각나면서 참 감사하고, 많은 분들의 노력으로 인해 한 사람의 어려움이 조금은 나아진다는 생각에 마음에 큰 감동이 되기도 했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도와주려고 하며, 아침일찍부터 A씨와 함께 병원을 동행해주시고, 진료와 약국에서 약을 받는 일까지 세세히 도와주신 보호소 상담사님께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고, 예상치 못한 비용이 생겨 어려움에 처혔을 때 국립의료원의 사회사업실 직원분께서도 직접 원무과에 가서 해결해주신 일도 있었는데 그것도 너무나도 감사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너무나도 쉽게 진행될 수 있는 일이 보호소에 있는 A씨에게는 참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제가 만난 많은 분들이 주어진 일 이상으로 애써주심으로 인해 A씨 뿐 아니라 저에게도 동기부여가 된 감사의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존경하는 이국종 교수님께서 한 말씀으로 글을 마무리 해보고 싶은데요.
'사회를 이롭게 바꾸기 전에 좋은 동료를 만나라.'
난민들을 위한 온정과 헌신을 보여주신 모든 분들께, 이러한 동료가 되어주셔서 감사하고 존경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뜻밖의 어려움

 
피난처 난민보호팀 이연천 간사
코로나 19로 막혀있던 하늘길이 열렸는지, 요즘은 점점 새롭게 난민신청하시는 분들이 피난처에 많이 오십니다. 얼마 전 아프리카의 말리에서 온 부부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난민신청 안내와 신청서를 쓰는 것에 도움이 필요해 피난처의 문을 두드린 분들이었습니다.
난민보호팀에서는 보통 이러한 분들에게 난민신청절차를 안내하고, 필요한 서류와 절차를 설명하는 일을 하는데요.

서류를 작성하는데에 부족함이 없도록 꼼꼼히 체크해드리면서 안내를 드렸습니다. 그들의 모국어가 불어여서, 불어로 난민신청서를 작성할것에 대해 말씀드리고 영어로도 제출을 해야하니 번역기를 돌려서 쓰면 된다고 안내를 했지만, 그 부부는 안타깝게도 글을읽는 것도 쓰는 것도 할 줄 모르셔서 기본적으로 난민신청서를 본인이 쓸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피난처는 원칙적으로 난민들이 직접 난민신청서를 써야하는데, 글을 못쓰시는 난민분이 22장이나 되는 난민신청서를 써야 하는것도, 이틀밖에 남지 않은 제출일자가 촉박했던 상황도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말리어와 영어를 같이 하는 친구가 있는지 물어봤지만, 아무래도 난민 본인의 사유를 다른 이에게 말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지라 그분에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요.
 
다음날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그 부부가 출입국에 가서 난민신청서를 잘 제출하였는지 연락을 했는데,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신청서가 거부가 되어 다시 써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습니다.  보통은 출입국에서 바로 추가되어야 하는 내용을 써서 제출하면 될텐데, 글을 쓸 줄 모르시는 난민분의 상황 때문에 다시 피난처로 와서 다시 작성하는 번거로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통역을도왔던 친구는 사정이 있어서 먼저 가버리고, 짧게나마 그를 통해 들었던 이야기를 통해 다시 난민신청서를 작성했습니다. 핵심적인 질문들만 답변 하나 하나를 쓰고, 불어를 조금 할 줄 아는 조카에게 이것을 적어달라고 부탁해서 겨우 출입국사무소에 신청서를 낼 수 있었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 출입국사무소에서 난민신청서를 무사히 받았고, 난민부부의 체류가 합법적으로 연장되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아슬아슬하게 체류기간 만료일 안에 연장허가가 되어서 감사하고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비슷한 사례가 몇 번 더 있었기에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습니다.

꽤 많은 난민분들이 읽고 쓰는 교육을 받지 못한 분들이 계셨고, 모국어 외에 공용어(불어, 영어 등)를 알고는 있지만, 상황을 잘설명할 정도로 구사하지 못하는 분도 계셨습니다. 아주 사소한 부분이 서류에서 누락되거나 부족해서 4-5번이나 난민신청서 제출을 거부당한 분도 계셨고, 결국 비자만료일을 넘어 난민신청서를 제출해 외국인등록증이 아닌 출국유예허가통지서를 받게 되고, 그로인해 취업이 가능하지 않아 생계의 어려움을 겪는 등, 의도치 않게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신 분도 계십니다.
 
글을 읽고쓰지 못하는 난민들의 다양한 사례들을 경험하며, 많은 난민들에게 이 난민신청 절차 과정이 무언가 굉장히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난민들은 다양한 출신의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의 사회가 한국 사회처럼 문자교육을 충분히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이러한 사례들을 통해 보다 난민 중에서도 더욱 교육의 부재를 경험한 이들에게도 쉽게 다가갈수 있도록 편리한 난민신청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갖추어지면 어떨까 바래봅니다.

한 명은 작아도 한 명

 
피난처 열국아이학교 최보라 인턴

 안녕하세요, 피난처 열국아이학교에서 신나는 두 달을 보낸 YP(영프로페셔널) 최보라입니다. YP를 준비할 때 늘 피난처 소식지에 글을 싣게 될 날을 꿈꿨는데, 드디어 그 날이 왔네요.

 2021년도에 출간된 <어린이라는 세계>에서 김소영 작가는 우리 사회에서 어린이들이 누려야 할 지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한 명은 작아도 한 명’이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이곳 열국아이학교에 있는 아이들과 매일같이 부대끼면서 이 말을 기억하려 늘 노력합니다. 한 명의 사람으로 대우받는 것을 경험할 때 이 아이들이 현재를 오롯이 누릴 수 있고, 더 나아가서는 이 아이들이 자라서 또 다른 어린이를 한 명의 사람으로 대할 수 있을 거라 믿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의 몸과 마음이 성장하는 것을 보는 것은 큰 기쁨입니다. 함께 한 날이 많아지면서 관계가 돈독해지고 그 안에서 자신을 펼치는 아이들을 볼 수 있는 이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열국아이학교도 아이들과 함께 자라고 있습니다. 지난 8월, 사단법인 위스타트와 협약을 맺어 매주 월요일마다 인성개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아이들은 요리, 가면, 매거진, 사진을 소재로 자신을 표현하고 유능감과 소속감을 느끼며 규칙을 지키고 화합하는 방법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때에 맞게 좋은 자원활동가 선생님들이 오셔서 많은 이들의 도움 속에 아이들이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 기쁜 요즘입니다. 그리고 바로 지난달인 9월, 용산혁신교육지구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아이들의 방과후 활동을 도와주실 두 분의 교육담당 선생님들이 함께 하시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한국어 학습이 필요한 아이들이 더스페이스 프렌즈의 아띠코리안을 통해 1:1 한국어 지도를 받으면서 날로 실력이 느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주변과 더 나은 소통을 하고, 자신을 둘러싼 이들의 사랑도 더 잘 느끼게 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합니다.

 저의 이름을 부르며 곁을 내어주는 아이들의 꾸밈 없는 모습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봅니다. 쌀쌀해지는 이 가을에 열국아이학교에 오는 모든 선생님과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서로에게 따뜻함이 되어주었으면 하는 작지만 큰 바람을 가져봅니다.

위기의 난민의 옆에서 기도하는 시간

 
피난처 교육협력팀 문지혜 간사
유난히 덥던 어느 여름날, 이태원에 살고 있는 피난처의 오랜 친구, 난민 프니엘라(가명)씨의 가정을 오랜만에 방문했습니다. 가만히 5분간 앉아만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습한 단칸방 중앙에 웬 핑크색 쇼파 하나가 떡하니 놓여져 있었습니다. 굉장히 답답해 보인다는 저의 생각과는 달리 프니엘라씨는 쇼파에 대한 에피소드를 신나게 늘어놓았습니다. 예전부터 무릎이 좋지 않아 쇼파가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기도해오던 중 어느 날 집 바로 앞에 버려져 있는 멀쩡한 쇼파와 집 안으로 쇼파를 옮겨줄 수 있는 지인 3명을 우연히 만나게 되어 쇼파를 들여놓게 되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신앙 안에서 일상의 소소한 기쁨을 큰 감사로 누릴 줄 아는 프니엘라씨는 하루 24시간 중 20시간은 기도하는 기도의 사람 입니다. 일반적으로 난민들이 겪을만한 어려운 문제들은 다 가지고 살아가지만 삶의 무게에 눌리지 않고 꿋꿋히 인내하고 이겨내는 누구보다 강한 사람입니다.

8월 둘째 주, 피난처가 주관하는 난민학교를 참여했던 교회 청년들과 함께 프니엘라씨와 교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피난처는 항상 다양한 교회 공동체와 난민들이 함께 하는 시간을 마련합니다. 바쁜 일상을 잠시 뒤로 하고 시간을 구별하여 소외되고 절망 속에 소망을 잃은 사람들에게 집중하고자 했던 귀한 청년들에게 이번 프니엘라씨와의 만남은 반전의 시간 그 자체 였습니다. 당연히 무기력하고 활기가 없을 것 같았던 난민, 프니엘라씨에게서 보이는 것은 절망과 우울이 아닌 내면의 강인함과 삶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감이었습니다. 실은 미래를 알 수 없고 해답을 쉽게 찾을 수 없는 막막한 현실을 매일매일 살아가는 것은 난민들 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프니엘라씨의 이야기는 청년들에게 긍정적인 자극과 도전이 되었고, 프니엘라씨의 강인함과 굳건함은 어느 때보다 빛나던 시간이었습니다.

사실 프니엘라씨의 당시 가장 큰 기도제목은 올해 연말까지 꽤나 큰 금액의 재정을 마련하는 일이었습니다. 체류문제와 딸의 미래가 걸려있는 일이었기에 무척 중요한 일이었지만, 몸이 불편하여 일을 할 수없었던 그녀에게 그 재정을 마련한다는 것은 마치 기적이 필요한 일과 같았습니다. 프니엘라씨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었지요. 그러한 프니엘라씨의 기도제목을 들으며 청년들은 함께 눈물로 기도하고, 프니엘라씨가 해결해야할 재정의 1/10을 믿음의 씨앗으로 심는다며 후원해주었습니다. 동정의 마음이 아닌 믿음의 사람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마음으로 한 후원이었습니다.. 누가 봐도 쉽게 해결될 수 없는 문제 앞에서 함께 힘이 되어주는 것이었죠. 정말로 놀라운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프니엘라씨에게는 필요한 재정 전액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프니엘라씨의 마음 속에는 어려운 시기를 함께 걸어주고 지지해 주는 사람들의 따뜻함이 지금까지도 여운으로 남아있습니다. 서로가 서로로 말미암아 일어나고 살아났던 시간들, 피난처의 8월은 올해도 굉장히 뜨거웠습니다.

난민보호팀의 새로운 시즌~!!


피난처 난민보호팀
Q : 피난처에 새로운 일이 있다고 하는데 알려주세요~!!

A: 하반기부터 피난처의 팀이 개편되었던 것이 가장 큰 일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Q. 자세히 설명해주시겠어요?

A: 올해 초부터 피난처는 내부적으로 팀 개편을 추진해왔습니다. 이런저런 다른 이유도 있었지만 개인사정과 이태원 방과후 학교 사업으로 인한 것이 컸습니다. 물론 재정적으로 인건비를 많이 사용하기 비영리단체라면 늘 가지고 있는 숙제와도 같은 것일 수도 있지만, 해당 업무를 담당할 사람이 부족하다 보니 업무를 여러사람이 나눠서 하기로 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원래 세 팀으로 이루어져있던 것을 난민보호팀과 교육협력팀, 이렇게 두 팀으로 나누어 간소화하게 되었지요.

Q: 오, 난민보호와 교육협력 이렇게 두 분야로 나뉜 것이군요.  이렇게 나뉘면서 업무의 변화가 있었나요?

A: 사실상 피난처는 팀별로 업무의 분야를 나누기는 하지만 유기적으로 서로 협력하고 논의하면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난민 한 사람을 돕기 위해 완전히 분리된 업무를 하기란 쉽지 않거든요. 그래서 팀의 구분이 무의미할 수는 있지만 나름대로는 조금 더 효율을 높일 수 있는 기회로 여기고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항상 고민하고 있어요.

Q. 개인적으로 팀이 개편되면서 겪고 계시는 시행착오가 있으실까요?

A: 제가 속한 난민보호팀에서는 주로 법률지원을 담당하던 IPD(Intake, Protection and Developement)팀과 생계 및 의료를 담당하던 생활지원팀이 한 팀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법률지원을 요청하거나, 인테이크(첫인터뷰)를 하는 난민들이 추가적으로 생계나 의료지원 등의 필요를 요청하는 부분이 많고,  요청이 오면 각 팀으로 연계하여 조력했었거든요. 그래서 이 일들을 한 팀에서 하게 되면 더 효율적일거라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각 팀에서 해오던 방식을 하나로 합치는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던거 같아요. 업무를 분담하는 것 역시 서로 다른 팀일 때는 쉽게 넘어갔지만 한 팀으로 일하게 되다보니 각자의 입장 차이들도 있어서 때로는 쉽게 결정하기 어려울 때도 있어요. 시간이 지나면 더 나아지겠지만, 아무래도 팀에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이 있다보니 서로 차이점을 배우면서 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Q: 아무래도 업무의 영역도 성격도 달랐는데 하나로 합쳐지면서 애쓰게 되는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A:  마음은 한 팀(one-team)이지만 아무래도 자신이 익숙하고 편한 것에 마음이 더 가기 때문에 다른 점을 받아들이고 또 함께 해나가는 것이 도전입니다. 사람이 아무래도 연약하고 이기적인 존재라고 하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민하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상반기에 내내 준비하면서 애써왔던 부분들이 실질적인 상황에 처하고 팀도 팀원 개개인도 새로운 도전을 맞이하는 기분입니다. 서로 깍여지고 배우는 과정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Q: 변화를 맞이하게 되면서 보호팀이 가지고 있는 마음가짐은 어떤가요?

A: 팀이 합쳐지고, 개인별 업무량은 늘어날 수밖에 없어 때로는 예민하고 피곤한 모습도 드러나긴 하지만 함께하는 팀원들을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에 많이 힘쓰려고 합니다.  그 누구보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의 이웃인 난민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우리의 부족함까지도 사용하시는 주님을 생각하면 난민보호팀이 이런 과정을 지나 또 어떤 고백과 감사를 하게 될지 기대하고 있어요. 또한 난민들을 향한, 난민들을 더 잘 돕고 싶고, 섬기고 싶은 우리 팀 모두의 열정과 소망이 있기에 더욱 성장하고, 단단해져가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많은 응원과 기도로 함께 해주세요.

앞으로 더욱더 단단해지고, 풍성해질 난민보호팀을 기대해봅니다!
 

마무리의 글

 
편집자 안지영 간사

지난 3개월은 참 많은 활동들로 바쁘게 보내는 시간이었습니다. 위에서 말씀해주신 것 처럼, 피난처의 전체 팀 개편이 이루어졌을 뿐 아니라, 새롭게 피난처를 찾아오는 난민들의 발걸음도 늘었습니다. 그리고 피난처를 통해 난민에 대해 알고 싶다고 이야기 하는 시민과 단체들의 요청도 많이 늘어났지요.
덕분에 피난처는 다시 바쁘게 발전기를 돌리며 달려가고 있습니다.

언젠가 대표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기억납니다. - 피난처의 정신은 항상 'ACTIVE'한 것이다. 때로는 쉬어갈 때도 있고, 느리게 갈 때도 있지만, 지난 23년동안 항상 피난처는 '활기있고, 생동감있게' 움직여 왔다. - 벅찬 순간도 있고, 풀리지 않는 어려움도 많지만, 그래도 여전히 자신의 삶을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기려 노력하는 난민들을 바라보며 함께 씨름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늘 주님께 구합니다. 우리의 힘이 아닌 피난처 되신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며 수많은 순간을 돌파해 온 피난처입니다.

그래서 난민들이 자신의 삶의 위기를 '돌파와 승리의 간증'으로 나눌 때 피난처는 가슴이 뜁니다.
위기 앞에서 어떻게 해야지? 라는 고민을 항상 같이 하고 있지만, 그 고비를 넘기는 난민들을 보며 적게라도 쓰임받을 수 있음에 감사하는 피난처입니다.

어떤 재난과 어려움이 생겨도 이상할것 같지 않은 이 시대 가운데에서 '난민들'을 통해 어려움이 그저 피하고 싶은 두려운 어떠한 것이 아닌, 우리의 인생을 더욱더 멋지고 단단하게 만들어줄 것이라는 것을 배워갑니다. 계속해서 피난처가 난민들이 위기를 넘어 생명으로 나아가는 시간에 좋은 친구로 함께 할 수 있도록 응원해주세요.

3/4분기 피난처에 찾아온 방문조력난민 통계
3/4분기 피난처의 재정통계
3/4분기 후원자 리스트
위 리스트에 누락되신 분이 계시다면 피난처 안지영 간사에게로 문의해주시기 바랍니다.
 
제법 찬바람이 불고 있는 가을입니다. 항상 따뜻한 마음으로 난민들의 안부를 물어봐주시고, 기꺼이 마음을 모아 재정과 물질로 기도와 응원으로 후원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남은 2022년도 피난처가 여러분의 마음을 모아 난민들에게 따뜻한 온기를 전할 수 있는 곳이 될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기도,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피난처 드림
후원으로 동참하기
피난처 후원계좌 : 국민은행 99-222-333-444 사단법인 피난처
페이스북페이스북
피난처 공식사이트피난처 공식사이트
피난처 유튜브채널피난처 유튜브채널
피난처 인스타그램피난처 인스타그램
블로그블로그
열국아이학교 인스타그램열국아이학교 인스타그램
피난처의 뉴스레터를 정기적으로 받고 싶으신 분은 정기구독(Subscribe)를 눌러주세요.
Copyright © 2022 난민들의 피난처, All rights reserved.

TOP